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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과 경제 소식

세계 경제 대공황(Great Depression)에 대하여

by 청수훈 2021.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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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의 세계 경제 대공황(Great Depression)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를 비롯한 세계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글에서는 세계 경제 대공황이 끼친 영향과 발생하게 된 원인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세계 경제 대공황(Great Depression)의 시작

1차 세계대전(WW1)이 끝난 후 각종 폭탄과 무기로 쑥대밭이 된 유럽과는 달리 본토에 전혀 피해가 없던 미국은 막강한 제조업과 전후 보상에 따른 영향으로 세계 초강대국으로 올라서게 됩니다. 1920년대 황폐화된 유럽은 빠른 재건을 하기 위해 국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했고 미국의 경제는 유럽으로의 수출 증가를 시작으로 모든 산업이 성장하는 사상 최고의 호황기를 맞이합니다. 미국 주식시장은 경제 호황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면서 다우존스 산업지수가 1924년부터 5년 동안 약 5배가 오르는 성장세를 기록했고 부동산의 가격도 계속 상승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빚을 끌어모아 투자를 했고 특히 주식시장은 과열 양상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투기붐이 일던 주식시장은 1929년 9월 3일에 381.17에 도달하면서 투자자의 환호를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한 달 뒤인 '검은 목요일'이라고 불리는 10월 24일에 급작스런 폭락으로 230.07까지 떨어지게 되면서

경제 대공황의 시작을 알립니다.

이후 다우지수는 1933년 7월 8일에 41.22까지 폭락하게 되고 미국 경제는 장기간 회복하지 못하는 경기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 대공황은 전 세계로 확장되면서 1930년대를 경제 암흑기로 만들고, 경제 기반이 취약했던 유럽은 이로 인해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게 되면서 2차 세계대전의 불씨를 품게 됩니다.

경작지 썸네일

2. 경제 대공황의 원인

경제 대공황(Great Dpression)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러 의견이 제시되고 있으나 주로 언급되는 두 가지 원인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스무트 홀리법

첫 번째로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 행정부가 1930년에 만든 스무트 홀리(Smoot-Hawley)법을 원흉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일부 학자 중에는 경제 대공황은 스무트 홀리법이 시행된 1930년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스무트 홀리법은 발제자인 리드 스무트(Reed Smoot)와 윌리스 홀리(Willis C Hawley)의 이름을 딴 관세법으로 2만여 수입 공산품에 대해 평균 59%, 최고 40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수많은 경제 학자들이 다른 나라의 보복 관세를 유발할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 목소리를 냈지만 후버 대통령과 공화당은 '미국의 국민총생산에서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4.2%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강행 처리하게 됩니다. 결국 다른 나라의 반발을 불러오면서 보복 관세가 현실화되었고 미국의 수출은 1929년 52억 달러에서 1932년 21억 달러로 줄어들게 됩니다.

일부 학자들은 스무트 홀리법을 대공황의 원인으로 보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929년 10월에 주식시장이 폭락한 이후 1930년 4월에 다우존스 지수가 294까지 오르면서 저점 대비 50%까지 반등을 했고 오히려 스무트 홀리법이 발효된 1930년 6월 17일 이후 주식시장은 3년 동안 하락하게 됩니다. 다우지수가 반등을 할 당시에는 후버 대통령이 "공황은 끝났다"라고 선언을 할 정도였습니다 유능한 경영자(CEO) 출신이었던 후버 대통령은 경제 대통령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이후 '머리 나쁘고 부지런한 최악의 미 대통령'이라는 혹평을 남기게 됩니다.

② 통화량 조절 실패

두 번째로 제시되는 대공황의 원인으로는 통화량 조절 실패가 거론됩니다. 경제 학자인 밀턴 프리드만(Milton Friedman)은 통화의 측면에서 대공황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금융공황이 대공황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고 후버 행정부의 부적절한 통화정책과 당시 연방준비은행의 통화긴축 정책이 결정적인 오류였다고 지적했습니다. 전 연준 의장인 밴 버냉키(Ben Bernanke) 역시 연준의 통화긴축이 대공황을 더 악화시켰다고 보고 있어서 경제 위기에 연준은 완화적인 통화 정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통화긴축을 원인으로 보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933년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가 미 대통령에 당선된 후 그 유명한 뉴딜(New Deal) 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뉴딜정책으로 1933년부터 1937년까지 경제가 회복되면서 대공황을 벗어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1937년 이후 대규모 정책 실행으로 발생한 재정적자로 인해 이전처럼 큰 규모의 공공사업에 더 이상 재정을 투입하기 어렵게 되자 다시 실업률이 20%에 이르는 경기 불황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특수가 생기기 전까지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합니다. 이처럼 재정적자를 통한 통화완화를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면서 다시금 경기 침체에 빠지게 된 겁니다.

이밖에 대공황의 원인으로 수요 부족으로 인한 과잉설비를 원인으로 보는 '유효수요설'과 지나친 빈부격차로 인한 '부의 불평등'을 원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3. 경제 대공황의 영향

결국 경제 대공황은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 중 하나가 됨과 동시에 이후 미국 경제 정책에서 자본주의의 정책에 사회주의의 요소를 더한 혼합경제 정책으로의 변화를 보여주게 됩니다.

역사에 가정이라는 것은 없지만 만약 당시에 경제 대공황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실행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겁니다. 경제 위기는 지금도 여러 가지 이유로 발생하고 있고 그때마다 인류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이런 반성과 노력이 위기를 극복해가는 원동력임을 지금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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